추월산의 노변정담 2011. 9. 22. 11:09

수능을 20여일 앞 둔 고3 교실.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긴장감보다는 소란스러운 여유가 묻어 나온다. 전남여고 3학년 협의실에 들어서니 김성중 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신다. 뽕잎차의 구수한 내음을 맡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 중 아이들이 드나들며 수능시계 구입을 물어보기도 한다. 수능이 멀지 않았음을 새삼 느낀다.

별빛 내리는 추월산

이른 새벽 출근하고, 별빛 보며 퇴근하는 고단한 고3 담임이지만, 마음은 언제나 시를 향해 있다. 지금은 ‘문학이라는 이름의 섬’ 블로그(http://blog.paran.com/ksjkimbyeoll)에 매월 시를 올리며 시를 향한 열정을 지피고 있지만, 90년대 중반까지 시창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동안 선생님은 시인으로 단련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격동의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담양 추월산 아래 용면에서 나고 자라 대숲에서 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아스라이 뒤로 하고, 부모님의 상대 진학 권유를 뿌리치며 국문과에 입학할 때에도 창작 보다는 문학에 대해 연구해 보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대학생활을 누려볼 여유도 없이 시대의 풍랑 속에 흔들리고 만다. 80년, 입학하자마자 전두환, 신군부 타도를 외치며 5․18을 겪는다. 81년 9월에는 전대에서 열린 전국적인 규모의 시위에 참여하다 강제 휴학을 당하고 군대를 가게 된다. 강원도 인제․원통, 최전방의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때 보았던 풍광은 힘든 군대생활을 보상해주기라도 하듯 아름다웠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운 하나 족발

87년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선생님은 금호고에 1년 기간제로 일하다가 사립공채시험에 합격하여 88년 정식으로 임용된다.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시에 대한 열정이 꽃피기 시작했다. ‘시문학반’ 지도 교사가 되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방식의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몸빼에다 시를 쓰거나, 삼각형 판넬을 이용하는 등 아이들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그대로 수용해서 주위를 놀라게 한다.

그렇게 열정을 쏟아 꽃을 피울 때쯤 89년 전교조 해직 사태가 일어나고, 선생님도 학교를 떠나게 된다. 이후 얼마 동안 운암동에서 김병한, 배정찬 선생님과 함께 족발집을 함께 하고, 나머지 시간은 지부 사무실에서 활동한다. 그 기간 동안 힘들고 즐거웠던 추억이 시 ‘그리운 하나 족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복직해서 광산중, 광주제일고, 광주예술고, 전대사대부고, 대자중, 현재 전남여고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의 시를 향한 열정은 멈추지 않는다. 2000년에는 <<교육비평>> 창간호에 ‘문학선생’ 외 3편을 싣기도 한다. 현재 광주국어교사모임 ‘시울’과 매월 금요일에 모이는 ‘금시’에서 활동하고 있다. 선생님에게 ‘시’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며 존재하는 이유이다. 살아가며 느낀 모든 것이 시가 되고,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쓸 수밖에. 올해 담임을 맡은 아이들이 스승의 날에 선생님이 지은 시들을 한 편 씩 손으로 써서 시집을 만들어 선물했을 때, 선생님은 분명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세상이 미친 듯이 굴러갈 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고3 진학부장이다. 선생님 수첩에는 수시원서접수와 상담 일정이 빼곡하다. 자율학습 감독도 돌아가며 하고 있다고 하지만 진학부장으로서 책임감이 어깨에서 느껴진다. 피곤한 듯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 속에는 입시를 앞둔 고단한 아이들이 아른거린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아이들마다의 꿈이 있는데 원하는 곳으로 가지 못하는 점, 모든 것을 점수로 환산해서 미래를 계산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지금은 고3 진학부장이지만, 입시교육에만 매몰된 세상에 선생님은 한 마디 던지신다. ‘바퀴를 굴리며’라는 시처럼. 검색창에 ‘문학이라는 이름의 섬’을 찾으면 잔잔한 음악과 함께 선생님의 시가 말을 걸어올 것이다.

바퀴를 굴리며

- 김성중

굴렁쇠를 굴리던 시절

세상을 굴리고 싶었던 시절

둥근 지구가 둥글어서

굴렁쇠는 잘도 굴렀지.

왼종일 굴려도

또 굴리고 싶던 굴렁쇠

지금은 자동차 바퀴를 굴린다.

붕붕 시동을 걸고

변속기를 조작하면서

가속 페달을 밟으면

신기하게도 바퀴가 굴러간다.

혼자서 잘도 굴러간다.

제동페달을 밟을 때까지.

세상도 이와 같아서

미친 듯이 굴러갈 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는.

김지선 기자 (ddang75@hanmail.net)

'추월산의 노변정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독 교체 유감  (0) 2011.10.18
제발 끼워 주세요  (0) 2011.09.22
겨울나무  (0) 2011.07.06
총기사고, 안타깝습니다  (0) 2011.07.06
원자력 발전을 생각한다  (0) 2011.05.25
posted by 추월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