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산의 노변정담 2011. 7. 6. 23:03

겨울나무

바람이 쌩쌩 분다. 어제만 해도 포근한 바람이더니 비 갠 뒤에 바람 끝이 자못 매섭다. 어제 내린 초겨울 비에 나뭇잎이 죄다 떨어졌다. 야무지게 아직도 붙어 있는 녀석들도 있지만, 겨울나무는 홀가분하다. 잎을 떨쳐 버렸으니, 더 이상 광합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도 나뭇가지 사이로 흘려보내면 그만인 것을. 지난 여름 태풍이 몰아칠 때 애태우던 일을 한 번 떠올려봐!

바람이 불어온다. 싸늘한 바람이다. 눈보라와 함께, 진눈깨비와 더불어, 바람이 불면 나무는 허리를 잔뜩 구부린다. 바람을 맞아 싸우려는 게 아니다. 나뭇잎 옷을 다 벗어버리고도 오히려 더 당당한 모습으로 찬바람(북서풍)을 맞아 떡 버티고 서있는 너를 보노라면, 작은 바람에도 재채기를 해대는 나약한 나를 반성한다. 두꺼운 옷을 입고서도 어깨를 잔득 움츠린 나를 경멸한다.

벌거벗은 나무를 칭송하는 것은 아니다. 나무는 해마다 옷을 벗었다가 입으면서 나이테를 더한다. 그러면서도 잘난 체를 하지 않으니 이는 얼마나 커다란 미덕이냐? 화석연료를 펑펑 때면서도 지구에게 미안함을 모르는 인간들은 나무를 좀 본받아야 한다. 이제부터 나무를 연구하자. 나무의 미덕과 공덕을 사랑하자. 내 몸을 덮고 있는 옷을 벗어서 나무의 시린 어깨를 덮어주자. - 2004년 12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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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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