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야기 2006. 9. 11. 10:38
털어내는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김 성 중(광주제일고 교사)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김준태, [참깨를 털면서]<시인, 1970> 전문


우리네 삶에서 털어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스스로들 위안하고 살지만,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고고한 삶을 사는 사람은 얼마나 존경스럽습니까?

김준태(1948년 해남 대지리에서 태어남)의 [참깨를 털면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3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이 시는 그가 1970년에 조태일 시인(2000년 작고)이 펴내던 《시인》이라는 잡지에 발표했던 것인데, 그의 첫시집『참깨를 털면서』(창작과 비평사, 1977)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이 시를 발표하고 얼마 뒤에 시인은 더러운 제국주의자의 전쟁인 베트남 전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가 전쟁의 비참함을 털어댑니다. 지금은 농촌에서도 참깨를 터는 일을 보기가 힘들 정도로 수입산 참깨가 우리의 식탁을 점령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짜진짜참기름임'을 선전하는 참기름을 먹고 삽니다.

시인은 '희한하게도' 참깨를 털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세상사에서 느끼기 어려운 쾌감'을 참깨를 털면서 느끼는 것입니다. 이는 도시생활(대학생활)에서는 느끼지 못하고 시골에서만 느끼는 즐거움입니다. 시골은 시인에게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입니다. 도시의 삭막함이나 비정함이 아니라 푸근한 할머니의 인정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신바람이 나고, 참깨를 작신작신 두들겨패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입니다. 물론 할머니의 꾸중을 들으면서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하지만, 시인은 참깨를 터는 것만으로도 세상사의 온갖 잡다한 번뇌를 잊어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이지요. 물론 시인은 이 시에서 '인간을 두들겨 패고 고문하고 쥐어짜서' 정보를 얻어내려는 사악한 정권의 음모를 알레고리 수법을 써서 고발하고 있기도 합니다.

도시는 인간을 비정하게 만듭니다. 시골의 논과 밭에서 느끼는 따뜻함이나 정직함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오직 효율성만을 지고의 가치인 양 우리들을 세뇌시키며 무한경쟁의 속도전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습니다. 우리의 학교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모순이 학교라는 공간에 들어와 있습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처럼 금방 성과가 드러나지 않으면 무능력한 교사나 뒤처진 학생으로 낙인을 찍어버립니다.

교실마다 들어왔거나 들어올 컴퓨터를 등에 업은 멀티시스템이 우리 교사들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7차교육과정이 우리 교사들을 벼랑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수월성만을 추구하는 7차교육과정에는 인간이 보이지 않습니다. 학급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교사는 시대에 뒤떨어진 촌놈이 되어버립니다. 탐욕스런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신자유주의 정책만이 관류하는 7차교육과정을 인간의 체취가 풍겨나는 인간교육과정으로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김준태는 '참깨를 털면서'라는 시에서 우리에게 신바람 나는 참깨털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털어도 털어도 쏟아지는 참깨는 우리를 고소하게 합니다. 전영택의 소설「화수분」에 나오는 화수분, 아무리 끄집어내도 끝없이 재물이 나온다는 단지처럼, 우리 교사들이 털어내야 할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 교육'이 아닐까요?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참깨처럼 쏟아지는' 정말로 우리 사회를 살맛나게 하는 그 무엇으로 가득찬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을 우리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꾸 물음표만 던지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김준태의 시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서두르지 않으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들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으로 이 시를 읽습니다.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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