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2007. 4. 24. 11:50

봄이 오는 길목에서 / 김성중


겨울의 추위가 아무리 매서워도 봄은 파란 새싹과 함께 오고야 만다. 겨우내 움츠려졌던 우리의 가슴도 봄이 오면 활짝 펴질 것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봄을 기다린다.

봄은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 봄을 싫어하는 사람은 땅위에 발을 붙일 자격이 없다. 봄은 청춘에 비유되며 인간의 영원한 추억의 샘터이다. 얼음장 사이로 흐르는 개울물은 봄의 신선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는 짓궂은 장난꾸러기이지만 봄을 봄답게 하기 위한 예비 작업이다. 그리하여 동백이 빨간 꽃망울을 터뜨리면 봄의 축제는 시작되는 것이다.

봄이 되면 농부의 손길이 바빠진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면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한다. 갑자기 대지는 활개를 치고 모든 물상들은 몸서리를 치는 것이다. 묵었던 찌꺼기를 털어버리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찬란한 자연의 품으로 달려들고 싶은 충동이 우리의 가슴 속에서 요동친다. 봄은 계절의 여왕이며 또한 새롭게 시작하는 계절인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해마다 새로운 봄을 맞는다.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우리는 더욱 성숙해진다. 지난해의 봄과 올해의 봄을 비교해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에 입학했던 사람은 이제는 어엿한 선배로서 후배를 맞을 것이며 대학의 황금시절을 보낸 사람은 아쉬운 졸업반이 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변화가 이럴진대 안으로 삭인 고통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했을까 하는 것은 불은 보듯 훤하다. 삶의 길목에서 서성이다가 몇 번이나 돌아서서 아픔을 되씹었던가? 대로는 자신의 존재마저도 잊어버리고 허둥대던 불면의 밤은 또한 몇 날이던가? 그저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가는 돛단배처럼 목표 없이 방황하던 날들의 기억은 이 봄을 맞으면서 잊어버려야 한다.

캠퍼스의 봄은 또 다시 최루탄 가스에 질식해야 할 것인가? 맑게 갠 봄날에 우리는 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우리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유스러운 캠퍼스를 원한다. ‘봄은 왔는데 봄 같지 않다’는 우울한 이야기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려야 한다. 우리의 봄은 우리가 지켜야 하며 캠퍼스의 봄 동산에서는 우리가 주인이며 정원사인 것이다. 시시껄렁한 신문의 사설은 안 읽더라도 우리의 젊은 피는 식어서는 안 된다. 봄은 우리의 가슴에 불을 댕기고 행동하게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시골길엔 질경이라는 풀이 있다. 숱한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 끝내 일어서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풀로서 우리 민족의 혼이 들어 있는 잡풀이다. 봄의 길목에서 새삼스레 떠오르는 이 풀은 내게 삶의 의미를 다시 확인시켜 준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가야만 하는 아픈 마음들이 있기에 우리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이 봄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두들기며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다. 결국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며 소수의 집단이나 엘리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의 가슴에 아프게 새겨 두자.

세월은 흘러간다. 그래서 우리들도 변해간다. 처음에 품었던 뜻은 언제인가 사라지고 온갖 잡생각만이 머리를 혼란하게 하는 지금 새로운 각오와 다짐이 필요하겠다. 우리는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이 분명한 이상 “우리”라는 커다란 배가 항해해야 할 방향과 목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하리라. 우리들의 마음속에 감춰진 더러운 이기심을 버려야 할 때가 왔다. 아름다운 전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이 봄엔 타는 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보려는 서툰 몸짓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의 가슴을 활짝 열고 자신의 결점을 내보이는 그리하여 더욱 끈끈한 끈으로 우리의 마음이 맺어지면 더욱 좋겠다. 누구를 욕하고 누구를 원망하랴. 자신의 행동을 뒤돌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무정한 세월은 흘러만 간다. 무등산에 올라가서 힘껏 악이라도 쓰면서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싶다. 이 봄이 유난히 화려하고 멋진 계절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국어국문학회보 제4호, 전남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 국어국문학회, 1986년 3월]에서


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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