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야기 2008. 11. 26. 10:05

대표시

나는야 세컨드1

김경미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 드라이브 나가자던 자든 여자든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아니, 강변의 모텔의 주차장 같은

숨겨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 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두번째,

첫번째가 아닌, 순수하게 수학적인

세컨드, 그러니까 이번, 이 아니라 늘 다음, 인

언제나 나중, 인 홍길동 같은 서자, 인 변방, 인

부적합, 인 그러니까 결국 꼴찌,


그러니까 세컨드의 법칙을 아시는지

삶이 본처인 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 것 세컨드, 속에서라야

정직함 비로소 처절하니

진실의 아름다움, 그리움의 흡반, 생의 뇌관은,

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 그곳에

그러므로 자주 새끼손가락을 슬쩍슬쩍 올리며

조용히 웃곤 할 것 밀교인 듯


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



*김경미 시집 『쉿, 나의 세컨드는』(문학동네/1판 1쇄 2001.11.23./ 개정판 1쇄 2006.3.31.)44-45쪽


[발문]

1.세컨드는 무슨 뜻인가? - 두번째

2.사람들은 세컨드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 본처 말고 첩

3.시의 화자는 세컨드를 무엇으로 인식하는가? - 첫번째가 아닌 것, 늘 다음인 것, 홍길동 같은 서자, 변방, 부적합, 꼴찌인 것

4.세컨드의 법칙은? - 삶이 본처인 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것, 조용히 새끼손가락을 올리며 세상의 세컨드라고 하며 웃을 것

5.진실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가 있다고 하는가?-그곳(세컨드)

6.정직함은 어디에 있다고 하는가?-세컨드

7.‘당신은 세컨드야’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

8.결국 시의 화자가 세컨드가 되고 싶은 이유는? - 정직함, 아름다움, 편안함, 일상에서 벗어남, 삶으로부터 빗겨 섬, 생존경쟁으로부터 일탈.



[감상]

당신은 퍼스트인가? 퍼스트가 되고 싶은가? 그러나 퍼스트는 하나이고, 다음은 세컨드다. 어찌할까나. 아내가 남편의 퍼스트(본처)가 아니고 세컨드(첩)라고 생각하고, 다짐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아내는 남편에게 최선을 다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퍼스트에 대한 강박관념이 시의 화자를 세컨드에 매혹시켰을 것이다. ‘일등이 아니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는 광고가 말해주듯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우승열패가 일상이다. 그래서 화자는 퍼스트가 아니라 세컨드에,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 적자가 아니라 서자에, 적합이 아니라 부적합인 것에 애정을 갖는 것이다.

더 읽을 시

헤비메탈을 들으며

김경미



―선배도 이젠 고상한 음악 좀 들으세요.

나이도 있는데…… 온 국민이 다 재즈 팬인데……


돌아와 또 메탈 볼륨을 올린다 드럼 채가 튀어 식탁을

두드리고 신발장 안의 구두들 일제히 날아오른다

미안하다 이웃들이여 나 진심으로 그대들 사랑한

적 없다 서로 사랑하지 말고 묵묵히 멀리 있자고

그것만이 진실이리라고

나도 이렇게 시끄러운 볼륨을 높이니


고백건대 국산도 말고 외제 메탈만 듣는다

멀리 있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

상처가 되지 않는 거리

라벤더와 제라늄 식의 먼 명칭들

고백건데 저녁 무렵이 되면 신데렐라처럼

소리치고 싶어진다 돌아가야 해요 난 실은

사람이 아니에요, 난 식물이란 말예요!


매일 몇 마디씩이라도 하는 내가 때로 시끄러워 견딜 수 없다 침묵과

슬픔과 내향만이 내가 아는 메시아이므로

그러므로 누가 뭐래도 나는 무겁고 묵묵하게

고요하고 슬픈 음악을 들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식물처럼 깊어질 때까지



*김경미 시집 『쉿, 나의 세컨드는』(문학동네/1판 1쇄 2001.11.23./ 개정판 1쇄 2006.3.31.) 80-81쪽


[감상]

당신은 헤비메탈을 좋아하십니까? 시의 화자는 이웃들에게 ‘서로 사랑하지 말고 멀리 있자’고 외치며 메탈 볼륨을 높이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외친다. 그리고 외제 메탈만을 듣는다.

시의 화자는 상처를 많이 받은 모양이다. 그래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헤비메탈을 들으며 인간을 너머 식물이 되고자한다. 식물은 고요하다. 시의 화자 또한 시끄러운 음악속으로 침잠하고자 한다. 침묵과 슬픔과 내향만이 시의 화자를 구할 구세주이므로.



다른 시인의 시

손끝마다

최정규(1951- ) 경남 통영 출생



개구리 입속에서

하아얀 찔레꽃이 피어오르는 날


동네 어른들과

새 주민등록증을 내기 위해

이장님 봉고차를 타고

면사무소로 가는 길에


지문이 안 나와 우짜노 걱정하시는

달티 할머니 한 말씀 앞에

세상천지 어느 입이 맞대답 하리오


종자씨 만들어 가꾸고 키워 온

할머니의 닳아버린 지문 속에서

온 산천이 되살아나고 손끝마다

우담바라 꽃망울이 벙글어 진다


*최정규 시집 『둥지 속에서』(당그래/2004년 3월 13일 초판 인쇄) 21쪽

[감상]


농촌의 삶이다. 지문이 닳아없어지도록 씨를 뿌리던 달티할머니의 손은 생명의 손이며 거룩한 손이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안은 손이며 우담바라(3000년만에 꽃이 피는 꽃)인 것이다.



다른 시인의 시

푸른 제복

이시영(1949- ) 전남 구례 출생



양지다방에서 내려다보면 구례읍 로터리의 교통순경은 늘 그 사람이었다. 푸른색 상의에 남색 바지, 가슴과 등에 ×자로 흘러내리는 흰색 벨트를 메고 챙이 짧은 경찰모에 어깨에 잎사귀 견장을 붙인 그가 원통형의 교통 지휘대에 올라서서 멋진 수신호와 함께 다람쥐처럼 은빛 호각을 불어제끼면 구례읍으로 들어오는 모든 차들은 일단 멈춤을 했다가 그의 손길이 머무는 곳으로 움직였다. 하루에 대여섯 차례씩 들락거리는 광주발 부산행 시외버스나 순천발 남원행 완행버스가 전부이긴 했으나 아침 햇살을 받으며 로터리를 지나 읍내중학교로 등교할 때마다 우리는 고동색 경찰서 정문을 배경으로 들려오는 그의 간단없는 호각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걸음을 빨리 하곤 하였으니, 키가 작달막하고 박정희처럼 뒤꼭지가 툭 튀어나온 그가 거기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장날의 우마차꾼들이나 지게꾼들에겐 큰 위협이었을 것이다. 하루는 어느 나무꾼이 마른 장작짐을 지고 북문쪽으로 길을 건너다 호각소리에 혼비백산하는 것을 보았고 송아지를 달고 나온 농부의 착한 소가 놀라서 아스팔트 위에 푸른 똥을 싸는 것을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모든 질주하는 것들의 안내자이자 길의 활달한 통제사. 로터리의 한쪽은 군청과 병원이고 다른 쪽은 학교였는데 어쩌다 하교길에 교통 지휘대에 선 그가 안 보이면 읍내 거리가 일시에 통제기능을 잃고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20년 뒤 정년퇴직할 때까지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구례읍의 푸른 근대의 상징이자 뒤꼭지가 툭 튀어나온 권력의 작은 집행자. 그의 호각소리가 등뒤에서 들리지 않는 날이면 사나운 개들도 무척 심심하였다.


*이시영 시집 『은빛 호각』(창비시선 230/2003년 11월 20일 초판 1쇄/2004년 9월 20일 초판 3쇄 발행) 34-35쪽


[감상]


한가한 시골읍 로터리에 은빛 호각을 불어제끼는 키가 작달만한 교통순경이 눈 앞에 서있다. 그가 불어제끼는 호각 소리는 읍내의 교통을 통제한다. 사람들의 정신도 통제한다. 그래서 그는 모든 질주하는 것들의 안내자이자 길의 활달한 통제사이다. 작은 박정희를 떠오른다. 그가 없으면 모두가 심심할 정도로 사람들은 그의 호각에 길들여졌으므로.



박봉우 시인

이시영



이가 거의 다 빠진 합죽이 박봉우 시인이 내 손을 잡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시영이 자네를 팔아 술깨나 얻어 먹었네그려!” 생애 후반의 대부분을 전주시립도서관의 따분한 직원으로 얹혀지낸 시인은 술 생각이 간절한 저녁이면 인근의 지인들에게 전화하여 “창비에 있는 이시영이가 자네 시집을 내주기로 했다”고 속여 공술을 자주 대접받았다고 하는데 그중에는 내 고등학교 때의 은사 이 모(某) 선생님도 계셨다.


*이시영 시집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창비시선 277/2007년 6월 15일 초판 1쇄 발행) 26쪽


[감상] 친구를 팔아서 술을 얻어먹는 합죽이 박봉우 시인이 얄밉다.





고향

이시영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은 내 친구 장점현의 고향. 이가 시린 차거운 개울물을 건너면 그의 집이었다. 산 아래에 의젓하게 자리잡은 반듯한 초가집. 마당에 차일을 치고 이웃 마을의 신부를 맞아 혼례를 치르고 며칠 동안 흥겨운 잔치를 벌인 뒤에 우르르 번암면 소재지로 달려가 결혼기념 사진을 찍었던가. 모두들 소년기가 채 가시지 않은 애틋한 얼굴들이었다. 그뒤 생활의 최전선인 서울에서 여러 번 만났다. 오금동 벌판에서 그가 형과 함께 고물 수집상을 하고 있을 때, 봉은사 뒷마을에서 도배꾼을 하고 있을 때, 그리고 느닷없이 대모산 강남구 훈련장에서 또 한 번.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것은 연락을 받고 달려간 영동세브란스병원. 대장암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병실로 실려나온 직후였다. 아직 가래를 뱉지 못한 상태였지만 소년처럼 꼭 다문 입술로 한번 보고 싶었노라고 했다. 그날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무슨 말을 했던가.

장수군 번암면은 내 친구 장점현의 고향. 이가 시린 차거운 냇물을 건너면 이제는 따뜻한 그의 무덤. 여러 굽이를 휘어돌기는 했지만 집부터 무덤까지의 거리는 이렇듯 지척이었다.


*이시영 시집 『바다호수』(문학동네/2004.5.20. 초판 1쇄 발행) 38-39쪽


[감상] 이렇듯 삶과 죽음은 늘 지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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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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