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52건
- 2008.03.06 :: 너무 많은 입-천양희의 시 읽기 1
- 2007.12.28 :: ''뎡쇼년''은 고려판 ''오렌지족'' 1
- 2007.11.22 ::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 장석남
- 2007.11.14 :: 자명한 산책 / 황인숙
천양희 대표시
너무 많은 입 (17쪽)
재잘나무 잎들이 촘촘하다 나무 사이로 새들이
재잘댄다 잎들이 많고 입들이 너무 많다
이(李)시인은
마흔살이 되자
나의 입은 문득 사라졌다
어쩌면 좋담,이라 쓰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좋담
쉰살이 되어도 나의 입은
문득 사라지지 않고
목쉰 나팔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좋담?
다릅나무 잎들이 촘촘하다 나무 사이로 새들이
다른 소리를 낸다 잎들이 다르고 입들이 너무 다르다
[발문]
1. 재잘나무는 어떤 나무인가? -갈참나무의 황해 방언.
2. 마흔살이 되자 입이 사라졌다는 무슨 뜻인가? - 마흔살이 되자 입이 무거워지고 말을 아끼게 되었다는 뜻.
3. 쉰살은? - 50세, 쉬어버린 나이.
4. 목쉰 나팔은? - 나이 들어 듣기 사나운 말을 하는 입. 사라져야 할 입
5. 다릅나무 -
6. 새들이 내는 다른 소리란? - 다릅나무는 다름나무? (다른나무). 그래서 새들이 다른 소리를 낸다.
7. 나뭇잎들이 다르고 새들의 입이 다르다? - 동음이의어, 펀(말장난). 나뭇잎은 나무의 입.
[감상]
재잘나무와 다릅나무, 마흔살과 쉰살, 사라진 입과 목쉰 나팔. 비교와 대조, 언어유희를 동원하여 재미있는 시를 썼다. 언어유희는 천양희 시인의 특기인 것 같다. 재잘나무는 재잘대는 새 때문에 재잘나무다. 갈참나무에 앉아서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를 들어보자. 즐겁지 않은가? 그런데 쉴새 없이 재잘대는 사람의 소리는 지겹다. 50이 되어서도 쉰 목소리로 재잘대는 소리는 어떨까? 40이 되면 무게중심을 잡아야 한다. 불혹의 나이가 아닌가.
*천양희 시집 [너무 많은 입](창비/2006.8.05.) 17쪽
*다릅나무 : 쌍떡잎식물 장미목 콩과의 낙엽활엽 교목. 산에서 자란다. 높이는 15m에 달한다. 나무 껍질은 엷은 녹갈색이고 광택이 있다. 잎은 어긋나며 홀수 1회 깃꼴겹잎이다. 작은잎은 타원 모양 또는 긴 달걀 모양이며 길이가 5∼8cm이고 끝이 뾰족하며 밑 부분이 둥글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목재는 결이 아름답고 무거우며 질겨서 기구재·기계재·차량재·농기구의 자루·땔감 등으로 쓰인다. 한방에서 가지를 양괴라는 약재로 쓰는데, 관절염에 물을 넣고 달여서 복용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중에서
더위가 혹독하여 가만히 있어도 땀이 스며 나오는 한여름 절정, 꽃이 가장 귀한 시기다. 그러나 고요한 산골짜기에 넘칠 듯 많은 하얀 꽃무더기를 이루는 다릅나무가 있다.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흰꽃이지만 꽃이 귀한 7~8월에 핀다. 높이 15m 정도 낙엽활엽 교목의 콩과 다릅나무속이다. 꽤 예리하고 엄청난 가시의 위엄으로 귀신을 쫓는다는 엄나무나 단아한 수형과 다양한 쓰임새로 액막이하는 회화나무처럼 독특한 냄새로 귀신과 병마를 쫓는 벽사목 구실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잎은 회화나무나 아까시나무를 닮았고 열매는 아까시나무를 닮았다. 어릴 때는 큰 나무 아래서 잘 자라며 점점 성장하면서 햇빛 요구도가 높은 양수로 변하고 생장생육이 빠르다. 원예 및 조경용으로 관상가치가 높은 식물이며 나무가 단단하면서 심재와 변재가 뚜렷하여 목각인형, 목걸이 같은 장식용 세공물로 이용한다. 나뭇결과 무늬가 아름다워 목재로써의 가치도 높이 평가받는다. 쓰임새는 회화나무처럼 꽃은 차로, 수피는 염료로, 가지는 관절치료제로 쓰인다.
내한성, 내음성, 내건성이 강하고 비교적 대기오염에도 잘 견딘다.
〈도움말-생명의숲국민운동〉
[더 읽고 싶은 시]
시인의 말(91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혁명은 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한 시인이 있다 빨래집게가 어쩌다 아이 속옷을 잡고 있는
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날이라고 말한 시인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풍경은 엄마가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책 읽어주는 것이라고 말한 시인이 있다 아이의 웃음이
세상에서 가장 환한 꽃이라고 말한 시인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시는 인간이 어머니 자궁에서 나와
최초로 터뜨리는 울음이라고 말한 시인이 있다
은목서 꽃향기처럼 만리나 멀리
스며나갈 시인의 말이여
[감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혁명은 한 아이가 태어나는 것. 빨레집게에 아이의 속옷의 잡혀 있는 날이 가장 눈부신 날. 엄마가 무릎에 아이를 앉히고 책을 읽어주는 것이 가장 평화로운 풍경. 아이의 웃음이 가장 황홀한 꽃. 인간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와 최초로 터뜨리는 울음이 가장 위대한 시!
가장 아릅답고, 눈부시고, 평화롭고, 황홀하고, 위대한 것은 아이와 관계 있는 것!! 이렇게 말하는 시인의 말은 은목서 향기처럼 멀리멀리 퍼져나가는 것.
-별똥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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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뎡쇼년'은 고려판 '오렌지족'?>
황병익 교수 한림별곡 분석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당당당 당추자(호도나무), 조협(쥐엄)나무에 / 붉은 실로 붉은 그네를 매옵니다 / 당기거라 밀거라 뎡쇼년아! /아, 내가 가는 그곳에 남이 갈까 두려워 / 옥을 깎은 듯 부드러운 두 손길에 옥을 깎은 듯 부드러운 두 손길에 / 아, 손 잡고 노니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
고려 고종(高宗) 시대 한림학사(翰林學士)들의 합작품이라는 경기체가(景幾體歌) 작품인 한림별곡(翰林別曲) 제8연이다. 붉은 실로 맨 그네를 여인들이 타고, 그들을 '뎡쇼년'들이 밀고 당기고 하는 풍경이 눈에 선하다.
이 뎡쇼년은 한자표기가 정소년(鄭小年). 언뜻 보면 정씨 성을 지닌 소년인 듯하다. 실제 그렇게 푼 연구자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보기에는 뭔가가 시원치 않다. 그네를 밀고 당기는 소년이 한두 명이 아닐 터인데 유독 정씨 집안 소년들만 떼지어 나왔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네를 타는 여인과 희희낙락하는 '뎡쇼년'을 보면 어쩐지 90년대 한국문화사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인 '강남 오렌지족'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뎡쇼년'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한국고전시가 전공인 황병익 경성대 국어국문학과 초빙외래교수는 이를 우선 '정(鄭)나라 소년'이라는 뜻으로 푼다. 여기서 정나라는 고대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후국 중 하나로 기원전 375년 한(韓)나라에 멸망했다. 종주국인 주(周) 왕실과는 같은 종족에 속한다.
황 교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계간 학술기관지로 최근 발간된 '정신문화연구' 겨울호(제30권 4호. 통권109호)에 투고한 '<동동> '새셔가만하얘라'와 <한림별곡> '뎡쇼년(鄭少年)'의 의미 재론'이라는 논문에서 '뎡쇼년'은 음란한 음악을 뜻하는 '정성'(鄭聲)이나 '정음'(鄭音)처럼 굳어진 말로서 정나라 젊은이들처럼 방탕한 유희를 일삼는 선비들을 의미한다고 풀었다.
황 교수에 의하면 정(鄭)나라는 같은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인 위(衛)나라와 더불어 음란방탕한 문화를 대표하는 존재였다. 이에 의해 정나라 음악이라고 하면 곧 음란한 음악과 같은 말이었다.
심지어 논어 양화편에 수록된 공자의 말 중에는 "자줏빛이 빨간빛을 탈취함을 미워하며 정나라 음악이 아악(우아한 종묘 음악)을 어지럽힘을 미워하며 예리한 입놀림이 나라를 뒤엎음을 미워한다"는 대목이 보일 정도다.
황 교수는 나아가 한림별곡에 보이는 '뎡쇼년'이 전국시대 말기에 나온 법가(法家) 이데올로기의 성전인 한비자(韓非子) 중 내저설상(內儲說上)에도 그대로 나온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이에 의하면 '정소년'(鄭小年)은 "학문이나 수양 등 자신을 가꾸는 데 힘쓰지 않고 떼지어 다니며 해이하고 방탕하게 지내던 정나라의 젊은이들을 말한다"는 것이다.
한비자의 정나라 젊은이들에 대한 이런 세태 기술은 사마천의 사기 중 순리열전(循吏列傳)에서는 '희롱을 일삼는 방종한 더벅머리들'을 뜻하는 '수자'(竪子)라는 표현으로 대체되고 있다. 사마천은 이들의 이런 행동을 '희압'(戱狎)이라 묘사하기도 했다.
황 교수는 '뎡쇼년'이 방탕한 젊은이를 지칭한다는 또 다른 방증자료로 한림별곡이 제작된 시기에서 멀지 않은 시대를 산 고려말 문인이자 정치가인 목은 이색(李穡)이 남긴 '추천'(그네)이라는 시를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그곳 청춘남녀들이 그네 띄는 모습을 보고는 고국 고려의 단오절 풍경을 회상하며 읊은 이 시 마지막 구절에는 "붉은 실 그넷줄은 허공에 박차 오르고 / 당겨주고 밀어주는 저기 저 소년들 / 굳고 굳은 사내 마음 여인네 눈길에 흔들리네"라고 노래했다.
이로 볼 때 황 교수는 한림별곡 뎡쇼년은 "남녀간 유희를 거침없이 즐기며, 여자들이 탄 그네를 밀며 방탕하게 노는 선비들을 해이하고 방종하게 나라를 어지럽히던 정(鄭)나라의 소년들에 견준 말"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황 교수는 같은 고려가요 동동(動動) 중 9월령에 등장하는 난해한 어구인 '새셔가만하얘라'는 '새셔/가만하얘라'로 끊어 읽어야 하며, 이 경우 '새셔'는 '새로 거른 좋은 술'을 의미하며, 따라서 이 구절은 "새로 거른 술에 (국화) 향기 그득하구나" 정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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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시]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 장석남(28-29쪽)
저 새로 난 꽃과 잎들 사이
그것들과 나 사이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무슨 길을 걸어서
새파란
새파란
새파란 미소는,
어디만큼 가시려는가
나는 따라갈 수 없는가
새벽 다섯 시의 감포 바다
열 시의 등꽃 그늘
정오의 우물
두세 시의 소나기
미소는,
무덤가도 지나서 저
화엄사 저녁 종 지나
미소는,
저토록 새파란 수레 위를 앉아서
나와 그녀 사이 또는
나와 나 사이
미소는,
돌을 만나면 돌에 스며서
과꽃을 만나면 과꽃의 일과로
계절을 만나면 계절을 쪼개서
어디로 가시려는가
미소는,
*장석남 시집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문학과지성사/2007.5.4. 5쇄)
[발문]
1. 미소의 뜻은?-소리를 내지 않고 표정만 살짝 지어 웃는 엷은 웃음. 알듯 모를 듯한 웃음. 긍정인가 비웃음인가.
2. 미소는 어디로 가는가?-감포 바다, 등꽃 그늘, 우물, 소나기, 무덤가, 화엄사 저녁종
3. 꽃과 잎들과 나 사이, 나와 그녀 사이, 나와 사이의 ‘사이’는 어느 정도의 거리일까?-가늠하기 어렵다.
4. 미소는 대상을 만나면 대상과 친해지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관심, 사랑, 애정
5. 무엇이 삶을 긍정하게 하는가?-‘미소’라는 시어 자체가
[감상]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다. 세상을 살짝 웃으며 주유하는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존경해야 한다. 이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팍팍한지를 알기에 우리는 도통한 것처럼 미소를 띠기가 쉽지는 않다. 미소는 새파랗다. 젊다. 늙은이가 아니다. 그러기에 미소는 패기가 있다. 대상을 만나면 그 대상과 하나가 되는 변신술을 갖고 있다. 이만한 긍정과 조화가 어디 있겠는가. 이 시의 화자도 미소를 닮고 싶어한다. 대상과 나의 사이를 좁히는 미소를 띠고서.
[더 읽고 싶은 시]
옛친구들 / 장석남(54-56쪽)
근 십 년이나 못 만난 친구가 있다는 것은, 그래 그것은
나이도 나이지만 새것이 되어 서 있는 가을 나무 아래 오래 앉아 있게 만든다
간혹 물든 잎들이 떨어지는 각도를 손바닥을 펴서 받아든다
만난지 십 년이 넘은 친구를 만나서 나는 이 낙엽의 각도를
십 년간 키워온 나의 사상이라고 말해주련다
나의 사상, 나뭇잎이 떨어지는 각도를 알아차렸다는 것은 위대하다
지난 봄에도 몇 개의 묘목들을 사다가 수돗물을 뿌리면서 계단 아래 흙에 묻었었다
나의 사상,
계단을 오르내리며
오르고 내리는 것의 섭리를 생각한다
국제 정세와 남북경협을 생각하기도 한다 위대한 진리인 미국을 생각하고 죽었다 깨어나도 미국을 이길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굴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끽 소리 나지 않게 우아하게 굴복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목숨은 그래도 끝까지 부지하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 찍 소리 나지 않게 나를 단속하고 간혹은 딴청을 부려야 한다는 기교까지 생각한다
오랜만에 만난 또 한 친구는 영업을 하려 든다
물이 중요하다고, 요는 정수기를 들이라는 친구가 있고
낡은 차를 바꾸라는 친구가 있다
신문에서 두어 번 보았노라고 대뜸 술을 사라고
그 돈을 다 어디에 쓰느냐고 정치인 취급을 하는 친구가 있다
어떤 친구는 과거를 험담한다
나의 정직은 과거에도 있지 않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지 않다
나의 정직은 모든 시간 속에 長江萬里와도 같이 유유하다
유유한 시간 속의 정직을 나뭇잎이 떨어지는 각도는
아름답게 수식한다 나는 저 수식이 좋구나
나는 이 가을 나무 아래 더 앉아 있다가
더 오래 앉아 있다가 불이 켜지는 서울을 내려다보며
더, 더 앉아 있다가
이 나뭇잎이 수북이 한 인간을 다 덮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나뭇잎이 어깨를 친다는 사실에도 놀란다
나무들이 어둠 속에서 점점 새롭게, 새롭게 서고 있다
저 정직이 오랜 우정이라고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진 않겠다
귀는 얼고
[감상]
시인은 가을 나무 아래에 앉아서 나뭇잎들이 떨어지는 각도를 손바닥으로 받는다. 나뭇잎은 여러 각도로 떨어진다. 곡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시인은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날 나무 아래에 오래 앉아서 정직과 우정을 생각한다.
친구들은 시인에게 무엇을 팔려고 한다. 가을 나무로부터 얻은 삶의 지혜와 철학은 정직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각도는 자연의 섭리라는 정직한 각도이리라. 인간이나, 인간이 만든 국가에 딴청을 부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시인의 정직은 나무로부터 배운 철학이다. 나무는 아래에서 위로 자라고, 나뭇잎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수직과 하강!
[추천시]
첫사랑 / 고재종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 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 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고재종 시집 [쪽빛 문장](문학사상사/2004.10.30.) 95쪽에서
[감상]
꽃은 그냥 피는 것이 아니다. 눈이 내리는 겨울날, 눈이 나무에게 꽃을 피우게 하려고 내려 쌓이고 흩날리고 쌓이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햇솜 같은 마음마저도 나무에게 다 퍼부어주고 난 뒤에 황홀한 꽃이 피는 것이다. 꽃은 불에 덴, 사랑에 덴 자리에서 피어난다. 꽃은 눈과 나무의 사랑으로 생긴 아름다운 상처다.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타올랐다가 식어버리는 사랑이 너무 많다. 양은 냄비 같은 사랑, 일회용 반창고 사랑, 풀잎사랑........
눈이 나무에게 쏟는 사랑은 숭고하다. 겨우내 공을 들였을 눈의 노고를 치하해야 한다. 그렇게 피어난 봄꽃이 아름답지 않을 리 없다. 온갖 고난을 이기고 피어난 사랑은 아름답다.
첫사랑은 이렇게 황홀한 것이다. 설렘이다. 순수하고 뜨거운 것이다. 첫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도 공을 들이는 이 세상의 모든 청춘들에게 이 시를 소개하고 싶다.
*고재종 : 1957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남. 시집에 [바람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새벽 들][사람의 등불][날랜 사랑][앞강도 여위는 이 그리움][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쪽빛 문장]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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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시]
자명한 산책 / 황인숙 (94-95쪽)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금빛 넘치는 금빛 낙엽들
햇살 속에서 그 거죽이
살랑거리며 말라가는
금빛 낙엽들을 거침없이
즈려도 밟고 차며 걷는다
만약 숲 속이라면
독충이나 웅덩이라도 숨어 있지 않을까 조심할 텐데
여기는 내게 자명한 세계
낙엽 더미 아래는 단단한, 보도블록
보도블록과 나 사이에서
자명하고도 자명할 뿐인 금빛 낙엽들
나는 자명함을
퍽! 퍽! 걷어차며 걷는다
내 발바닥 아래
누군가가 발바닥을
맞대고 걷는 듯하다.
-황인숙 시집 <자명한 산책>(문학과지성 시인선 281/문학과지성사/초판 2003.12.11./8쇄 2006.7.10.)
[발문]
1.자명하다의 뜻은?-별다른 증명이나 설명이 필요 없이 그 자체만으로 명백하다.
2.낙엽을 거침없이 즈려 밟고 차며 걷는 이유는?-누구의 소유도 아니어서 부담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권이 없다는 것은 공동의 소유이거나 금전적 가치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3.숲 속의 웅덩이나 독충을 조심하는 이유는?- 숲 속은 잘 모른다. 웅덩이나 독충은 시인에게 두려운 존재다. 자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4.자명한 세계를 퍽 퍽 걷어차며 걷는 이유는? - 너무 자명해서 시시하고 긴장감이 없기 때문. 눈을 감고도 걷는 길이란 얼마나 심심한가. 자동화된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낯선 곳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
5.발바닥 아래 누군가 발바닥을 맞대고 걷는 듯하다는 환상에 빠진 이유는? - 현실의 자명한 세계로부터 탈출하여 동화의 세계에 머물고 싶은 욕망의 드러냄이다.
[감상]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찾는다. 그러나 늘 새로운 것을 찾을 수는 없다. 새로운 것도 눈에 익으면 금방 낯익은 것이 된다. 아무리 낯선 것이라도 두 번 이상 보게 되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낯익은 것은 편하다.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신혼부부와 중년부부의 차이라고나 할까. 익숙하면 자동화된다. 우리들 삶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시인은 자명함을, 낯익음을, 자동화를 발로 퍽퍽 차며 새로운 일상을 꿈꾸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씩 외식을 한다. 그러나 외식도 자주 하면 물린다. 새로운 것도 처음에만 신기할 뿐 금방 시들해진다. 그래서 인생은 늘 새로움을 찾는다.
그러나 새로운 것만이 진리는 아니다. 자본주의의 구호 ‘새것이 아릅답다 New is beautiful’를 음미하시라.
산책은 자유롭고 여유롭고 새롭고 기가 막혀야 한다.
[더 읽고 싶은 시]
모진 소리 / 황인숙(20쪽)
모진 소리를 들으면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더라도
내 귀를 겨냥한 소리가 아니더라도
모진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쩌엉한다.
온몸이 쿡쿡 아파온다
누군가의 온몸을
가슴속부터 쩡 금가게 했을
모진 소리
나와 헤어져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고개를 수그리고
내 모진 소리를 자꾸 생각했을
내 모진 소리에 무수히 정 맞았을
누군가를 생각하면
모진 소리,
늑골에 정을 친다
쩌엉 세상에 금이 간다.
[감상]
모진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모진 소리를 해보았는가? 듣거나 말하거나 모질다.
이 시의 화자는 모진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쩌엉 아파온다. 내가 한 모진 소리에 속상해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늑골(갈비뼈)에 정을 치는 반성을 한다.
모진 소리를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리라. 모진 소리를 해야 할 때에도 상대가 마음이 아플까봐 말하지 못하고 적당히 넘긴다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면 넘어간다면, 우리 사회에 바른 말을 할 사람이 누구이며, 누가 잘못을 고치려고 하겠는가.
당신의 술버릇은 개차반이에요. 당신의 정책은 실현불가능해요. 당신은 성향미인이죠. 그래가지고 대학을 갈 수 있을까. 맨 날 먹고 마시고 놀면서 언제 돈 모을래. 대재벌이 비자금을 조성해서 공무원들에게 뇌물(떡값)을 주면서 장사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에게 모진 소리를 하지 않는다면 잠을 자는 학생이 고마워할까? 학교폭력을 일삼는 학생에게 모진 소리를 하는 담임교사를 모질다고 할 수 있을까? 전쟁을 좋아하는 부시에게 당장 전쟁을 그만두라고 모진 소리를 해도 부시는 그만 두지 않는데, 모진 소리를 하지 말아야 할까?
시인은 반성하고 있다. 모진 소리 때문에 아파하는 영혼들에게 미안함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모진 소리를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아직도 모진 소리가 필요하므로.
[추천시]
포옹 / 정호승
뼈로 만든 낚싯바늘로
고기잡이하며 평화롭게 살았던
신석기 시대의 한 부부가
여수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한 섬에서
서로 꼭 껴안은 채 뼈만 남은 몸으로 발굴되었다
그들 부부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사진을 찍자
푸른 하늘 아래
뼈만 남은 알몸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수평선 쪽으로 슬며시 모로 돌아눕기도 하고
서로 꼭 껴안은 팔에 더욱더 힘을 주곤 하였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줄 알지 못하고
자꾸 사진만 찍고 돌아가고
부부가 손목에 차고 있던 조가비 장신구만 안타까워
바닷가로 달려가
파도에 몸을 적시고 돌아오곤 하였다
*정호승 시집 [포옹](창비시선 279/2007.9.5.) 47쪽에서
[추천이유]
신석기 시대의 미이라라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여수 앞 바다의 어느 섬에 신석기 시대의 부부의 유골이 발굴됐다는 신문기사를 읽거나 방송보도를 본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 찬 얼굴로 섬으로 몰려가서 사진을 찍고 야단이 났겠다.
부부의 유골은 꼭 껴안은 모습이어서 호사꾼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겠지. 어떠한 연유로 곡 껴안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모습은 다정한 부부를 연상시키리라. 그런 모양새로 수천 년을 보냈으니 부부의 금슬은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은 그런 부부의 모습을 찍고 또 찍어대니 부부는 얼마나 부끄러울까. 그래서 부부는 모로 돌아눕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오직 조가비 장신구[영혼,정신,사랑]만이 안타까워 하면서 바닷물에 몸을 적시곤 한다.
부부 유골은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고자 하나 사람들은 부부에 대해 배려하거나 예의를 갖추거나 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면 그만인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쉬운 시대다.
이 시를 읽으면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는 사랑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결혼한 지 1년도 안 되어서 갈라서는 경박한 세태를 보면서, 사랑이란 얼마나 위대한지를 생각한다. 현대인들의 사랑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고약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남는 의문은 그 부부유골은 살아서 함께 묻혔을까, 죽은 뒤에 시체 위에 따로 또 묻었을까 하는 것이다. 순장인가, 합장인가? 별로 중요할 것 같진 않지만.
시인은 지금 보고 있다. 부끄러움을 간직한 사람을. 그리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을 배려하고 가려주는 사람을.
나도 나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러나 부끄러운 부분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리라.
-별똥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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