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이야기
2006. 9. 18. 00:02
<시에 전화하기>
이미지로 와서 착종하는 젊은 시 / 강은교
그렇다.현대시는 소리를 잃어버렸다. 이미지를 얻은 대신 메시지 성이 강한 소리를 잃어버렸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도화지이다. 표면상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무엇인가 이미 그려져 있는, 비어있는 캔버스이다. 그 끊임없는 도화지 위에서 소리와 이미지는 끊임없이 축소되고 확대된다. 소리는 이미지의 스피커이다. 또는 소리는 직접화법이며 이미지는 간접 화법이다. 우리의 시 위에서는 그 간접화법과 직접화법의 끊임없는 교차가 일어난다. 이미지는 끊임없이 팽창되고 증식되며, 그에 따라 소리는 끊임없이 축소되고 확대된다.
어둠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어둠 속이 보이듯이, 어둠은 수천의 어두운 밝음들의 비늘로 이루어져 있듯이, 현대시의 소리는 소리의 비늘 속에서 이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또는 이미지의 비늘 속에서 소리를. 그것이 교환이다. 이미지와 소리의 교환의 기적, 특수와 보편의 교환의 기적, 나와 그의 교환의 기적, ___ 그러한 기적이 언어 위에 어둠의 비늘을 쉴새없이 털어 대는 시____그것이 젊은 시이다. 끊임없이 젊은 시이다.
김수우의 시는 가끔 그런 이미지가 되는 소리길 위에 우리, 함께 서 있게 한다.
☎전화하기____1. 김수우
결혼을 앞둔 딸의 단지에
어미는 낙타젖을 따른다.
이는 세상의 강물이니 다 마셔야 한다
코끼리같은 허기가 기다리리니
저 펄럭이는 사막을 안아야 하리니
딸아, 이것을 다 마셔야 한다
사람이 네게로 흘러오리니
사람이 네게서 넘쳐나리니
일곱 살에 색칠햇던 하늘, 한 뼘 한 뼘 완성되어
말라깽이 가슴도 젖살이 오르리라
낙타 등에 올라탄 언덕을 보아라
야자나무가 키우는 낮달을 보아라
이 세상 강물이 달지 않느냐
어미 젖가슴에서 쏟아진 사막
딸의 앞자락 속으로 감겨든다
_______김수우「낙타의 젖이 달다」
김수우에게 전화를 한다.
☎ 위의 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처음 착상이 떠올랐는지, 그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써주시기 바랍니다.
☏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3년 가까이 생활한 적이 있다. 맨발로 뛰어다니던 말라깽이 아프리카 소녀들. 자라서 결혼이 정해지면 움막에 넣어놓고 낙타젖을 먹이는 원주민의 풍습이 있었다. 살을 찌우기 위해서다. 어머니들이 물려받은 사막을 딸에게 물려주는 하나의 과정이랄까. 그건 마치 이제부턴 삶이라는 사막과 홀로 정면대결을 해야한다는 하나의 결단처럼 여겨졌다. 딸이 사랑하고 살아가고 또 다시 낳아야 할 사막이고 삶이었다. 내게 사막은 존재론적인 세계였다. 사막은 삶의 원형이며 생명의 근원적 울림이 담긴 곳이다. 그 척박함을 살아내야 하는 사막 사람들의 방식에서 생명 자체에 대한 질긴 애정을 본다. 낙타젖을 먹고 살이 찌우려는 의식, 그것이 곧 세상 강물을 달게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현실 그 자체가 아닐까.
이미지와 소리가 시의 몸 위에서 뒤채며 끊임없이 비늘을 털어대고 있는 시가 또 있다.
이를테면 이미지는 소리의 간접화법을 이루고 있으며, 소리는 그 이미지의 직접화법이 되고 있는 시, 소리가 보이는 시, 이미지가 들리는 시_______문태준의 시이다.
☎전화하기___2.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_______「문태준/맨발」
☎ 시 ‘맨발’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처음 착상이 떠올랐는지, 그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써주시기 바랍니다.
☏ ‘맨발’은 물론 어물전에서 보고 손으로 만진 개조개 때문에 착상이 되었지요. 그러나, 부처가 열반 후 슬피 우는 가섭에서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보이며 마음을 전했다는 곽시쌍부(槨示雙趺)를 모티브로도 하고 있어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부처는 제자 가섭에게 내보인 것이 아닐지요.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는 나뭇짐을 지고 이십 리가 족히 넘는 김천장까지 그것을 팔러 다니셨던 일을 여러번 말씀하셨지요. 새벽에 집에서 지게를 지고 나서면 반나절을 걸어가셨다고 해요. 나뭇짐을 장에 내다 팔고 빈 지게로 돌아오실 때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쓴 시입니다.
☎시를 처음 쓰실 때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은 흔히 무엇인지요? 단어, 이미지, 문장, 혹은 주제, 이념 중에서?(단어∠ 이미지∠ 문장∠ ........식으로, 관심도의 순서를 써주시기 바랍니다)>
☏ 시는 단어로도 오고 이미지로도 오고 문장으로도 오고 주제로도 오고 또 구멍가게에 동네 주민 드나들 듯 수시로 찾아오지요. 마흔 해 넘게 작은 인쇄소를 경영하는 한 분이 그러시길, 직접 교열을 보다보면 책장을 그냥 넘기기만 해도 잘못되거나 빠뜨린 글자가 툭, 툭 벼룩 떨어지듯 튀어 나온다고 해요. 시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세상을 전면으로 스치고 지나갈 때 수면 위로 새우가 뛰듯 혹은 숭어가 뛰듯 튀어 오르는 수상한 놈. 이 놈이 와서 착종하는 게 시라고 봐요. 빈도로 봐서 저에게는 이미지로 자주 오고 그 다음이 문장, 그 다음이 단어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의 소리길 위에서는 이미지의 팽창 ․ 증식이 일어나고 있다. 이미지의 팽창 ․ 증식에 따라
소리의 확대 ․ 축소도 함께 일어나고 있다.
간접화법과 직접화법의 교차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미지는 소리가 된다. 이미지는 소리의 스피커가 되고 있다.
☎ 전화하기________3. 신경림
소리길은 결국 메시지 성을 띄우고 우리에게 달려온다.
소리의 시각화(視覺化)와 이미지의 청각화(聽覺化)가 순간 일어난다.
중국 실크로드에 있는 돈황굴의 그림 하나가 생각이 난다. 바람을 그린 풍신(風神)의 그림과 우뢰를 그린 뇌신(雷神)의 그림이다.그 그림은 각각 바람을 보이게 하고, 우뢰를 보이게 한다.
소리의 시각화이며, 이미지의 청각화이다.
신경림의 최근작시 두편을 소개한다.
하얀 눈 위에
작은 발자국이 찍혀 있다
빨갛고 가녀린 발이 뿅뿅뿅 밟고 갔으리
언덕이 끝나는 곳에서 그것은 끝나고
새파란 허공에
해맑은 새 한 마리 실루엣으로 찍혀 있다
어쩌나
내 발자국 끝나는 곳에서 둥실 떠올라
나도 저처럼 하늘에
실루엣으로 남는다면....
해맑기는커녕
검고 칙칙한 얼룩으로 누더기가 되어
허공에 실루엣으로 남는다면....
[허공/신경림]
어쩌다 꿈에 보는
복사꽃이 피어 있었을 거야.
장마당 앞으로 길게 강물이 흐르고 강물 위로는 안개가 피어나고.
사람들은 모이고 흩어지면서 웅성웅성 뜻 모를 말들을 주고받고
나는 덜렁덜렁 사람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면서 즐거워도 하고 슬퍼도 했지.
어디선가 물새도 울었어, 아침인데도 닭들이 홰를 치고.
나는 노새였던가 아니면 나귀였던가.
어쩌다 꿈에 보는 이것이 내 전생일까!
나는 나무가 되는 꿈을 꾸는 일도 있다.
낮이고 밤이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바람과 눈비에 시달리면서
안타까이 그 전생의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꿈을 꾸는 일도 있다.
조금은 거짓되기도 하고 또 조금은 위선에 빠지기도 하면서
그것이 부끄러워 괴로워도 하고 또 그것이 다행스러워 자못 안도도 하던.
막상 왜 사는지도 모르고 무슨 재미로 사는지도 모르면서
그것이 억울하고 한스러워 밤새 잠을 이루지도 못하던.
어쩌다 꿈에 보는 이것이 내 내생일까!
[어쩌다 꿈에 보는/신경림]
신경림의 시는 소리의 시각화와 이미지의 청각화를 보여준다. 소리의 시각화가 놓인 길은 소리길이다. 소리길 위에서 이미지는 팽창되고 축소된다. 이미지의 판을 이룬다. 이미지의 판이 현실이며 구체성이라면, 소리의 길은 신경림 자신의 말처럼 단순성이며, 성찰성을 이루는 메시지의 길이기도 하다. 이미지의 판 위에서 소리는 끊임없이 확대되고 축소되는 이미지의 스피커 노릇을 한다. 이렇게 소리와 이미지가 잘 결합했을 경우에 그 시는 소리길 위의 그림____간접화법과 직접화법의 교차를 획득한다.
신경림에게 묻는다.
☎시를 처음 쓰실 때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은 흔히 무엇인지요? 단어, 이미지, 문장, 혹은 주제, 이념 중에서?(단어∠ 이미지∠ 문장∠ ........식으로, 관심도의 순서를 써주시기 바랍니다)>
☏ 이미지-주제-이념-구체적인 언어.
리얼리스트인 그에게서 ‘이미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다.
이미지는 ‘가장 현실’이다. ‘가장 구체성’이다. 거기서 얻는 시는 아주 단순한, 직접화법의 시이다. 신경림의 시든지 김수영의 시든지, 소리와 이미지가 가장 단순하게 잘 결합했을 때,간접화법의, 직접화법으로의 자연스러운 전이(轉移)가 성공하고 있다.
그러니까 좋은 시의 비결은 시쓰는 이의 소리길과 현실인 이미지와의 접합 밖에 없다. 또는 이미지가 투사하는 소리길을 잘 뚫는 수밖에 없다.
소리와 이미지가 잘 결합했을 때, 잘 꿰매졌을 때, 그 시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사유화(私有化)를 벗어나며, 사담(私談)을 벗어난다.
다시 한 번 말하자. 이미지의 팽창,증식-소리의 확대 축소____소리는 시라는 소리길들이 있는 소리판 위에서 끊임없이 축소되고 확대되는, 이미지의 스피커이다.
좋은 시에서는 직접화법과 간접화법의 교차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강은교의 '시에 전화하기 8, 시인세계2006 봄]
[출처 : 강은교 시인 홈페이지]
이미지로 와서 착종하는 젊은 시 / 강은교
그렇다.현대시는 소리를 잃어버렸다. 이미지를 얻은 대신 메시지 성이 강한 소리를 잃어버렸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도화지이다. 표면상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무엇인가 이미 그려져 있는, 비어있는 캔버스이다. 그 끊임없는 도화지 위에서 소리와 이미지는 끊임없이 축소되고 확대된다. 소리는 이미지의 스피커이다. 또는 소리는 직접화법이며 이미지는 간접 화법이다. 우리의 시 위에서는 그 간접화법과 직접화법의 끊임없는 교차가 일어난다. 이미지는 끊임없이 팽창되고 증식되며, 그에 따라 소리는 끊임없이 축소되고 확대된다.
어둠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어둠 속이 보이듯이, 어둠은 수천의 어두운 밝음들의 비늘로 이루어져 있듯이, 현대시의 소리는 소리의 비늘 속에서 이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또는 이미지의 비늘 속에서 소리를. 그것이 교환이다. 이미지와 소리의 교환의 기적, 특수와 보편의 교환의 기적, 나와 그의 교환의 기적, ___ 그러한 기적이 언어 위에 어둠의 비늘을 쉴새없이 털어 대는 시____그것이 젊은 시이다. 끊임없이 젊은 시이다.
김수우의 시는 가끔 그런 이미지가 되는 소리길 위에 우리, 함께 서 있게 한다.
☎전화하기____1. 김수우
결혼을 앞둔 딸의 단지에
어미는 낙타젖을 따른다.
이는 세상의 강물이니 다 마셔야 한다
코끼리같은 허기가 기다리리니
저 펄럭이는 사막을 안아야 하리니
딸아, 이것을 다 마셔야 한다
사람이 네게로 흘러오리니
사람이 네게서 넘쳐나리니
일곱 살에 색칠햇던 하늘, 한 뼘 한 뼘 완성되어
말라깽이 가슴도 젖살이 오르리라
낙타 등에 올라탄 언덕을 보아라
야자나무가 키우는 낮달을 보아라
이 세상 강물이 달지 않느냐
어미 젖가슴에서 쏟아진 사막
딸의 앞자락 속으로 감겨든다
_______김수우「낙타의 젖이 달다」
김수우에게 전화를 한다.
☎ 위의 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처음 착상이 떠올랐는지, 그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써주시기 바랍니다.
☏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3년 가까이 생활한 적이 있다. 맨발로 뛰어다니던 말라깽이 아프리카 소녀들. 자라서 결혼이 정해지면 움막에 넣어놓고 낙타젖을 먹이는 원주민의 풍습이 있었다. 살을 찌우기 위해서다. 어머니들이 물려받은 사막을 딸에게 물려주는 하나의 과정이랄까. 그건 마치 이제부턴 삶이라는 사막과 홀로 정면대결을 해야한다는 하나의 결단처럼 여겨졌다. 딸이 사랑하고 살아가고 또 다시 낳아야 할 사막이고 삶이었다. 내게 사막은 존재론적인 세계였다. 사막은 삶의 원형이며 생명의 근원적 울림이 담긴 곳이다. 그 척박함을 살아내야 하는 사막 사람들의 방식에서 생명 자체에 대한 질긴 애정을 본다. 낙타젖을 먹고 살이 찌우려는 의식, 그것이 곧 세상 강물을 달게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현실 그 자체가 아닐까.
이미지와 소리가 시의 몸 위에서 뒤채며 끊임없이 비늘을 털어대고 있는 시가 또 있다.
이를테면 이미지는 소리의 간접화법을 이루고 있으며, 소리는 그 이미지의 직접화법이 되고 있는 시, 소리가 보이는 시, 이미지가 들리는 시_______문태준의 시이다.
☎전화하기___2.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_______「문태준/맨발」
☎ 시 ‘맨발’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처음 착상이 떠올랐는지, 그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써주시기 바랍니다.
☏ ‘맨발’은 물론 어물전에서 보고 손으로 만진 개조개 때문에 착상이 되었지요. 그러나, 부처가 열반 후 슬피 우는 가섭에서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보이며 마음을 전했다는 곽시쌍부(槨示雙趺)를 모티브로도 하고 있어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부처는 제자 가섭에게 내보인 것이 아닐지요.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는 나뭇짐을 지고 이십 리가 족히 넘는 김천장까지 그것을 팔러 다니셨던 일을 여러번 말씀하셨지요. 새벽에 집에서 지게를 지고 나서면 반나절을 걸어가셨다고 해요. 나뭇짐을 장에 내다 팔고 빈 지게로 돌아오실 때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쓴 시입니다.
☎시를 처음 쓰실 때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은 흔히 무엇인지요? 단어, 이미지, 문장, 혹은 주제, 이념 중에서?(단어∠ 이미지∠ 문장∠ ........식으로, 관심도의 순서를 써주시기 바랍니다)>
☏ 시는 단어로도 오고 이미지로도 오고 문장으로도 오고 주제로도 오고 또 구멍가게에 동네 주민 드나들 듯 수시로 찾아오지요. 마흔 해 넘게 작은 인쇄소를 경영하는 한 분이 그러시길, 직접 교열을 보다보면 책장을 그냥 넘기기만 해도 잘못되거나 빠뜨린 글자가 툭, 툭 벼룩 떨어지듯 튀어 나온다고 해요. 시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세상을 전면으로 스치고 지나갈 때 수면 위로 새우가 뛰듯 혹은 숭어가 뛰듯 튀어 오르는 수상한 놈. 이 놈이 와서 착종하는 게 시라고 봐요. 빈도로 봐서 저에게는 이미지로 자주 오고 그 다음이 문장, 그 다음이 단어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의 소리길 위에서는 이미지의 팽창 ․ 증식이 일어나고 있다. 이미지의 팽창 ․ 증식에 따라
소리의 확대 ․ 축소도 함께 일어나고 있다.
간접화법과 직접화법의 교차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미지는 소리가 된다. 이미지는 소리의 스피커가 되고 있다.
☎ 전화하기________3. 신경림
소리길은 결국 메시지 성을 띄우고 우리에게 달려온다.
소리의 시각화(視覺化)와 이미지의 청각화(聽覺化)가 순간 일어난다.
중국 실크로드에 있는 돈황굴의 그림 하나가 생각이 난다. 바람을 그린 풍신(風神)의 그림과 우뢰를 그린 뇌신(雷神)의 그림이다.그 그림은 각각 바람을 보이게 하고, 우뢰를 보이게 한다.
소리의 시각화이며, 이미지의 청각화이다.
신경림의 최근작시 두편을 소개한다.
하얀 눈 위에
작은 발자국이 찍혀 있다
빨갛고 가녀린 발이 뿅뿅뿅 밟고 갔으리
언덕이 끝나는 곳에서 그것은 끝나고
새파란 허공에
해맑은 새 한 마리 실루엣으로 찍혀 있다
어쩌나
내 발자국 끝나는 곳에서 둥실 떠올라
나도 저처럼 하늘에
실루엣으로 남는다면....
해맑기는커녕
검고 칙칙한 얼룩으로 누더기가 되어
허공에 실루엣으로 남는다면....
[허공/신경림]
어쩌다 꿈에 보는
복사꽃이 피어 있었을 거야.
장마당 앞으로 길게 강물이 흐르고 강물 위로는 안개가 피어나고.
사람들은 모이고 흩어지면서 웅성웅성 뜻 모를 말들을 주고받고
나는 덜렁덜렁 사람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면서 즐거워도 하고 슬퍼도 했지.
어디선가 물새도 울었어, 아침인데도 닭들이 홰를 치고.
나는 노새였던가 아니면 나귀였던가.
어쩌다 꿈에 보는 이것이 내 전생일까!
나는 나무가 되는 꿈을 꾸는 일도 있다.
낮이고 밤이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바람과 눈비에 시달리면서
안타까이 그 전생의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꿈을 꾸는 일도 있다.
조금은 거짓되기도 하고 또 조금은 위선에 빠지기도 하면서
그것이 부끄러워 괴로워도 하고 또 그것이 다행스러워 자못 안도도 하던.
막상 왜 사는지도 모르고 무슨 재미로 사는지도 모르면서
그것이 억울하고 한스러워 밤새 잠을 이루지도 못하던.
어쩌다 꿈에 보는 이것이 내 내생일까!
[어쩌다 꿈에 보는/신경림]
신경림의 시는 소리의 시각화와 이미지의 청각화를 보여준다. 소리의 시각화가 놓인 길은 소리길이다. 소리길 위에서 이미지는 팽창되고 축소된다. 이미지의 판을 이룬다. 이미지의 판이 현실이며 구체성이라면, 소리의 길은 신경림 자신의 말처럼 단순성이며, 성찰성을 이루는 메시지의 길이기도 하다. 이미지의 판 위에서 소리는 끊임없이 확대되고 축소되는 이미지의 스피커 노릇을 한다. 이렇게 소리와 이미지가 잘 결합했을 경우에 그 시는 소리길 위의 그림____간접화법과 직접화법의 교차를 획득한다.
신경림에게 묻는다.
☎시를 처음 쓰실 때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은 흔히 무엇인지요? 단어, 이미지, 문장, 혹은 주제, 이념 중에서?(단어∠ 이미지∠ 문장∠ ........식으로, 관심도의 순서를 써주시기 바랍니다)>
☏ 이미지-주제-이념-구체적인 언어.
리얼리스트인 그에게서 ‘이미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다.
이미지는 ‘가장 현실’이다. ‘가장 구체성’이다. 거기서 얻는 시는 아주 단순한, 직접화법의 시이다. 신경림의 시든지 김수영의 시든지, 소리와 이미지가 가장 단순하게 잘 결합했을 때,간접화법의, 직접화법으로의 자연스러운 전이(轉移)가 성공하고 있다.
그러니까 좋은 시의 비결은 시쓰는 이의 소리길과 현실인 이미지와의 접합 밖에 없다. 또는 이미지가 투사하는 소리길을 잘 뚫는 수밖에 없다.
소리와 이미지가 잘 결합했을 때, 잘 꿰매졌을 때, 그 시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사유화(私有化)를 벗어나며, 사담(私談)을 벗어난다.
다시 한 번 말하자. 이미지의 팽창,증식-소리의 확대 축소____소리는 시라는 소리길들이 있는 소리판 위에서 끊임없이 축소되고 확대되는, 이미지의 스피커이다.
좋은 시에서는 직접화법과 간접화법의 교차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강은교의 '시에 전화하기 8, 시인세계2006 봄]
[출처 : 강은교 시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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