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박이장
19년을 함께 살아온 장롱을 망치로 때려 부수다. 집안을 정리하면서 붙박이장을 놓기로 하면서 이 장롱의 운명은 결정되다. 이 장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산수동 상하방을 가득 채웠고 운암동 달용이네 집 이층방에서 참나 이불을 담았고, 운암동 숭일고 후문 대주아파트 주택 2층에서는 한결이 이불을 안았고, 일곡동 현대아파트 14층에선 10년 동안 안방을 지키다. 도배를 하고 장판을 갈고 하느라고 집안을 치울 때 제일 먼저 버리기로 한 것이 이 장롱이렷다. 장롱을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망치로 부숴가지고 엘리베이터에 싣고 내려가다가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문이 열리지 않는다. 나와 아들과 경비아저씨 세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휴대전화도 안 가져왔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버렸다. 경비실에 사람도 없는데...... 순간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오줌이 마려웠다. 아, 이러다가 숨이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문을 두드려 119를 불러달라고 고함을 쳐대고 어떤 아주머니가 119에 연락을 해서 구급대원이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주었을 때는 30여 분이 지난 뒤였다. 경비아저씨는 한밤중에 한 시간 30분을 갇혔던 적이 있었다고 얘기한다.
버려지는 농의 저주일까. 무릇 모든 물건들은 쓰임이 다하면 버려지는 것이 운명일진대, 장롱이라고 해서 다르겠는가. 허나 우리 집 장롱은 버림을 받으면서 야무지게 한 방을 날려버린 셈이다. 해체되어 버려지는 농의 슬픔을 말하기 전에 나이 들어가면서 망가지는 내 몸을 생각한다. 새길이 나면 헌길은 옛길이 되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세태이니, 헌 물건을 누가 들여다보기나 하겠는가. 농과 함께 버려진 책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거실을 점령했던 책들은 창고에 보관중인데 주인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릴 텐데, 주인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찾아가지 않으니, 창고방에 갇혀 있는 책들은 주인을 얼마나 원망할까. 차라리 버려달라고 아우성을 쳐대는 것은 아닐까.
버려진 장롱 자리에 말쑥하게 놓여있는 붙박이장이 이제 우리 집 터주대감인 듯 싶다. 나와 아내의 사랑을 많이 받을 것 같다. 붙박이장이 나와 아내를 붙박아두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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