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기 2008. 5. 17. 15:19

소인배 등급론


강 명 관(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내가 참여하는 작은 공부 모임을 마치고 단골집에서 평소 무간하게 지내는 K대학 P교수와 맥주잔을 기울였다. 그는 일전에 내가 쓴 「소인배 승승장구론」을 보았다면서, 어찌 소인배가 그것뿐이겠냐며 나를 나무랐다. 게다가 한문학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허균의 「소인론」과 박지원의 「마장전」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것 같다고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약이 올라 “그럼 자네는 소인에 대해 별다른 설이라도 있는가?”라고 했더니, 그가 맥주잔을 들이킨 뒤 소인배에도 등급이 있다면서 자못 장황하게 「소인배 등급론」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감탄한 나머지 아래와 같이 정리해 독자 여러분께 보여드린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같은 것이지만 다른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사과는 다 같은 사과지만 꼭 같은 사과는 없는 법이다. 너와 나는 같은 사람이지만, 또 너는 너이고 나는 나다. 같을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동일한 이치로 소인배 역시 같은 소인배이기는 하지만, 나름의 종류와 등급이 있다.


향원형 소인배, 과시와 이익을 위해 약간의 비판적 언사도


소인배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여 쉽게 찾을 수 있는 부류가 있다. 이들은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안다. 불의한 것을 보면 저것은 아닌데 하고 비판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울분이 치솟지만, 말을 꺼내거나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다. 타고난 성품이 워낙 소심한 탓이다. 한 마디 내지르고 직장(혹은 그에 상응하는 것)을 때려치우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나이 드신 부모님, 아내(혹은 남편), 어린 자식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그래, 세상이 원래 다 그렇지 뭐, 내가 참자, 이렇게 스스로 위안하면서 입을 다물고 만다. 이 부류의 소인들은 대개 인정스럽고 눈물이 많다. TV를 보다가 불쌍한 사람이 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축축하게 젖어 있다. 지하철에서 동전 한 푼의 적선이라도 하는 사람은 대개 이 사람들이다. 이런 소인들은 조선시대에는 ‘백성’이라 불렀고, 요즘은 ‘서민’이라 부른다. 주위에서 어렵사리 찾을 수 있으니, 좀스럽기는 하지만 실로 다정한 우리의 이웃들이다. 이들을 굳이 분류하자면 ‘생계형 소인’이라고 할 것이다.


생계형 소인과는 달리 무언가 부당한 일을 보면 비판적인 언사를 내뱉는 분들도 계신다. 그런데 이 분들은 자신에게 무해한 경우에만 비판에 과감하고, 정작 과감해야 할 경우에는 발언을 삼가는 습성이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비판적 언사 역시 비판하는 것이 옳아서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비판적인 사람임을 과시하기 위해 비판했을 뿐이다. 그는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는 것을 남이 알아주기 바란다. “이봐, 아무개 양반, 내가 이번에 따져서 당신이 속한 부서가 불이익을 받지 않게 했어, 당신은 내게 고마워해야 해, 그러니 내게 술을 한 번 사야 해” 이런 식이다. 그는 옳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약간의 비판적인 말을 한 것일 뿐이다. 이런 사람은 대학도 물론 있다. 공부와 연구의 중요성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진지하게 공부를 하거나 연구를 해 본 적이 없다. 겉으로는 늘 민주적 도덕적 언사를 늘어놓지만 속으로는 실상은 전혀 민주적 도덕적이지는 않다. 늘 생각하는 바는 자신의 안위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골프를 한 번 더 칠까, 외국에 한 번 더 나가서 놀아볼까 하는 생각뿐이다. 굳이 명칭을 달자면 ‘향원형(鄕愿型) 소인배’다.


창귀형 소인배, 권력을 추종해 착한 사람을 핍박하기도


향원형 소인배는 가증스럽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남을 해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을 해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소인배도 있다. 이들은 특징은 언제나 섬길 사람을 찾아 헤맨다는 것이다. 다만 그 섬길 사람은 고매한 인격을 갖춘 도덕적 인물이 아니라, 더러운 것일지라도 큼지막한 권력을 쥔 사람이다. 헤맨 끝에 그 사람을 발견하면 신명을 바쳐 섬긴다. 이들은 많은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자신만의 생각은 없다. 섬기는 윗분의 의견이 곧 자신의 의견이 되고, 윗분이 생각이 곧 자신의 생각이 된다. 윗분이 내뱉은 한 마디에, 이들은 피를 바르고 살을 더한다. 윗분의 한 마디는 기가 막히게 똑똑한 법과 규칙으로 탄생한다. 그들은 민족과 나라, 또는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라고, 또 일의 합리성이나 조직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진지하고 엄숙한 어조로 말하지만, 사실 목적은 딴 데 있다. 윗분에게 충성심을 과시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윗분의 권력을 나눠 받고 즐겁게 그 권력을 누리고 행사한다. 그 결과는 오직 선량한 사람을 옭죄고 해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소인배는 ‘창귀형( 鬼型) 소인배’라 할 것이다.



P교수는 넋이 나간 채 듣고 있는 나에게 “자네는 더럽다고 소리치며 학교를 때려치우지도 못하고, 골프도 못치고, 외국에 나가 산 경험도 없고, 권력 있는 사람 곁에는 가본 적도 없고, TV를 보다가 마누라와 눈물이나 흘리는 것을 보아 오갈 데 없는 생계형 소인배일세.” “그럼 자네는?” 반문하는 나에게 그는 “나도 그렇지 뭐.” 하고 대답하였다. 그날 두 생계형 소인배는 대취하여 어깨를 겯고 비틀거리며 주점을 나섰다.



글쓴이 / 강명관

·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저서 :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푸른역사, 2001

『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 소명출판, 1999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길, 2006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소명출판, 2007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푸른역사, 2007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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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추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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