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어요 2008. 12. 23. 13:05

해풍에 실어 보내는 남국의 그리움 : 동백나무 (Camellia japonica L)



동백나무는 찬바람이 불 때 비로소 꽃망울을 부풀린다. 다른 대부분의 꽃들이 시들고 잎마저 말라죽고 나면 동백은 오히려 푸른 잎을 반짝인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다소곳이 고개 숙인 동백꽃의 그 붉은 색깔은 겨울에 피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닷가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그리움의 꽃이다.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 도서지방과 서쪽으로는 대청도와 동쪽의 울릉도까지 바닷가를 끼고 자란다. 특히 서해 대청도의 동백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66호로 지정된 곳이다. 지구 위에서 위도상 가장 북쪽에 위치한 관계로 추위에 강하다.

문일평(文一平)은 《화하만필(花下漫筆)》에서 “동백은 속명(俗名)이요, 원명(原名)은 산다(山茶)이니 산다란 동백의 잎이 차나무와 비슷하여 생긴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춘(椿)이라 하며, 중국(中國)에서는 해홍화(海紅花)라 한다.”고 썼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동백꽃은 멀리 중국에도 잘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이태백(李太白) 시집에도 “해홍화는 신라국에 자라는데 꽃이 매우 선명하다.(海紅花 出新羅國 甚鮮)”고 했다. 또 《유서찬요(類書纂要)》에는 “신라국의 해홍화는 곧 산다를 말한다. 12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면 이듬해 2월 매화가 필 때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다매(茶梅)라고도 한다.(新羅國海紅 卽淺山茶 而差小 自十二月開 至月 與梅同時 一名茶梅)”고 했다.

지봉(芝峰) 이수광(李수光)이 지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옛 사람의 글을 인용하면서 “꽃이 큰 것을 산다(山茶)라 하고 작은 것을 해홍(海紅)이라 한다.”고 했다. 또 동백꽃에서 꿀을 빠는 동박새를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동백나무는 남쪽지방에서 난다. 잎은 겨울에도 푸르고 10월 이후에나 꽃이 핀다. 꽃색은 진홍빛이고 오래되어도 시들지 않는다. 이것은 옛날 사람들이 말하던 바로 그 산다(山茶)이다. 꽃이 필 때마다 푸른 새가 날아와서 그 꽃순을 먹으며 밤이 되면 그 나무에서 자기도 한다.



지봉은 동박새가 꽃순을 먹는다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꿀을 빨기 위해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녔던 것이다. 현대인이라면 동백꽃이야말로 동박새가 꽃가루를 옮기는 조매화(鳥媒花)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동박새가 깃들지 않는다면 곤충이 없는 겨울에 동백꽃이 필 턱이 없다.

원예학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동백꽃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자생하는 동백꽃과 애기동백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동백은 겨울에 꽃이 피어 봄까지 계속된다. 남부 도서지방에서는 11월부터 꽃이 피는데 비해 북쪽으로 가면서 개화기간이 늦어진다. 내륙의 최북단 자생지인 전북 고창의 선운사 뒷산 동백은 4월초에 개화한다. 또 지구상 가장 북쪽 자생지인 대청도 동백 자생지는 4월 중순이 절정기이다. 이를 두고 볼 때 동백이 반드시 겨울에 피는 꽃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옛 사람들이 말한 해홍화가 곧 동백이고 산다화란 애기동백을 말한다. 애기동백은 잎이 좁고 길며 가을에 서리가 내릴 때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겨울에 절정을 이룬다. 수많은 원예품종이 있다. 동백이 아교목이고 내한성이 강한데 비해 애기동백은 관목 상태로 자라는 것이 보통이다. 애기동백은 내한성도 약해서 주로 남부 도서지방에서 재배한다.

《양화소록(養花小錄)》의 부록 〈화암수록(花菴隨錄)〉에는 꽃을 9등급으로 나누었는데 동백은 선우(仙友) 또는 산다(山茶)라 하여 3등에 올려놓았다. 또 꽃이 피는 나무를 9품으로 나누었는데 동백은 작약, 서향(瑞香), 노송(老松), 단풍, 수양(垂楊)과 함께 4품에 들어있다.

성현(成俔)의 《용제총화(용齋叢話)》에는 그 지방에서 잘 자라고 맛이 좋으며 알이 큰 과일을 소개하고 있다. 정선에서는 배나무, 영춘의 대추나무, 밀양 밤나무, 함양 감나무라 적고 구례에서는 동백나무가 잘 자란다고 했다. 지금도 화엄사 뒤 대숲에는 붉은 동백꽃이 맨 먼저 봄을 알린다.

아무리 아름다운 동백꽃이라도 숲을 이룰 때에 가치가 있다. 한 그루만 달랑 서 있으면 외롭게 보이는 가 보다. 제주에서 불리는 동백꽃 노래이다.



낭기 존 딘 그늘이 좋고

동싱 한 딘 위품이 좋다

외론 낭게 외 돔박 ?이

외로 나난 설와라 ?다.



나무숲이 우거진 데는 그늘이 좋고 동생이 많으면 위엄이 있어서 좋다. 외톨박이로 서 있는 동백나무 같이 혼자 태어난 나는 서럽다 서러워. 나무꾼이 자신의 지게에 기대앉아 외로운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종이로 조화를 만들어 의식에 널리 쓰였다. 고려 때부터 불교의식이나 민속신앙 의식에서 지화(紙花)를 쓰게 되면서 일반 가정에서도 지화를 장식하는 일이 유행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때 만든 종이꽃을 보면 모란, 국화, 연꽃을 많이 만들었고 매화와 동백, 무궁화, 진달래도 불단이나 제단을 장식하는 데 쓰였다. 동백은 꽃이 크고 색깔이 선명하여 지화를 만들었을 때 다른 꽃보다 사실감이 있고 만들기도 쉬웠다.

동백은 사철 푸른 잎을 하고 있어 불사(不死)의 대상으로 보았다. 남해 도서 지방에서는 새로 담은 장독에 새끼줄을 걸고 소나무 가지와 동백 가지를 꽂는다. 잡귀와 역질이 들지 않기를 바라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풍습은 일본에도 남아있다. 정월달 집 대문 양쪽에 장대를 세우고 새끼로 연결하여 솔가지와 동백가지를 꽂는다. 이러한 장대를 가도마쓰(鬼木)라 하는 데 귀신이 얼씬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부산에는 동백나무 이름을 딴 동백시장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중고품 시장을 열어 성공한 곳이 부산의 동백시장이다. 가정에서 안 입는 옷가지를 모아 필요한 사람들에게 싼값에 넘겨주는 재활용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미망인이나 노동자 부인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옷이며, 밑반찬, 수공예품, 장난감 같은 것들을 들고 나와 서로 교환하기도 했고 팔고 사기도 했다. 지난 80년 초에 시작된 이 일이 부산의 각 구청별로 확산되었고 물자 절약은 물론 전국적인 사회 생활운동으로 정착돼 가고 있다.

중국 진나라의 시황제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불로초(不老草)와 불사약(不死藥)을 구하기 위해 동해로 사람을 보냈다는 전설이 있다. 그 사신이 우리나라의 제주도에 와서 가져간 불사약이 바로 동백기름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일본 교토의 쓰바키사(椿寺)에는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우리나라 울산성에서 훔쳐 그들의 괴수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바친 오색동백(五色椿)이 아직도 살아있다. 히데요시는 이 나무에 감시자를 두어 아무도 접근을 못하게 했다. 그리고 젊어지기 위해 씨에서 짠 기름을 혼자만 먹었다고 한다.

꽃은 통째로 떨어진다. 시들지 않은 꽃이 떨어지는 식물은 동백 말고는 별로 없을 것이다. 떨어진 꽃을 주워 술을 담가 마시거나 찻잔에다 띄울 수도 있다. 또 꽃잎을 찹쌀 반죽에 적셔 전을 부치면 맛깔스런 요리가 된다. 꽃을 쪄서 말린 것을 빻아 가루로 만들면 지혈제로 효과가 좋다. 외상에 뿌리거나 코피 날 때도 쓴다.

동백씨에서 짠 동백기름은 튀김요리를 할 때 좋고, 머릿기름으로 했던 화장유였다. 목욕 후에는 동백기름을 발라 피부를 매끄럽게 했다. 비누가 없었던 시절에는 잎을 태운 재를 물에 녹여 비누 대신 썼다고 한다. 동백기름은 기계의 윤활유로 쓰였고, 등불을 밝혔으며, 불에 데었을 때 상처 난 곳에 발랐다.

방랑시인 김삿갓(金炳淵)은 자신의 시에서 박물장수가 노파에게 동백기름을 파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연지, 분 등속 안 사시겠어요.

동백기름 향유도 갖고 왔다우

?脂粉等買耶否

東柏香油赤在斯



옛날에는 동백기름이 화장품으로 널리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씨에서 짠 기름을 화상에 바르면 상처가 쉽게 아물고 흉터도 잘 생기지 않는다. 머리에 바르면 머리카락이 세지 않는다고 알려져 부녀자들이 열매가 익는 겨울이면 다투어 동백 숲을 찾았다. 최근 일본에서는 동백기름에 발모 성분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 발모제를 합성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봄철에 새로 돋아나는 어린 싹을 나물로 먹는다. 새싹을 따면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찬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낸다. 이것을 무침, 전 같은 요리에 쓴다.

동백의 목재는 단단하여 최고급 목기를 깎는데 쓰였다. 그러나 지금은 큰 나무가 없으므로 동백목기도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또 동백나무로 구운 목탄은 화력이 세고 불티와 그을음이 생기지 않아 최고급 숯으로 쳤다. 남해 도서지방에서는 겨울철 화로에 담는 숯불로는 반드시 동백숯을 썼다. 그 때문에 동백나무가 수난을 받아 지금은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낭떠러지 같은 곳에만 남아 있다.

동백나무를 태운 재를 동백회(冬柏灰)라 하여 염색할 때 매염제로 썼다. 동백나무 재는 강한 알칼로이드 성분과 철분을 띠고 있어 선명한 붉은색과 보라색을 띤다. 동백회는 도자기의 잿물을 만들 때도 쓰인다. 동백회를 진흙 물에 섞어 유약으로 쓰면 고운 빛깔의 도자기를 구워낼 수 있다. 저 고려청자의 비취색은 동백회를 섞은 유약 때문에 그토록 고운 빛깔이 드러났는지도 모른다. 청자의 비색을 재현해 보는 일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posted by 추월산
: